박원순 학력 고등학교 서울시장 중학교 대학 서울대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부유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답니다. 그는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하면서,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제적을 당했답니다.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수학한 박 시장은 한국에 돌아와 사법시험을 준비했답니다. 결국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낸답니다.
이후로는 상당기간 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답니다. 민주화 운동에도 한복판에 섰답니다. 1980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과 아울러서,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주로 맡았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은 직장내 성희롱 풍토의 시선을 바꾼 유명한 일화가 있답니다. 박 시장은 지난 1995년부터 보폭을 넓혀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으로 활약했답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부정부패 혐의로 얼룩진 정치인들을 낙선시키자며 운동을 전개했고 대상자 86명을 명단으로 발표했으며, 총선을 앞둔 정치권을 뒤흔들기도 했답니다.
시민운동을 우리사회에 정착시킨 그는 기부와 모금 쪽으로 관심 분야를 넓힌답니다. 지난 2000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도 열었답니다. 기부받은 물건을 재가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팔고 그 수익을 기부하는 게 아름다운 가게의 주 목적이랍니다.
박 시장은 '소셜 디자이너'로도 활약하며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의 상임이사로도 일했답니다. 희망제작소는 공공기관에 시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일종의 싱크탱크로 우리나라 최초로 거버넌스(민관협치)를 현실화 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답니다.
그런 그는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된 서울시 사령탑의 후보로 급부상했답니다. 이후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단일화에 성공한 뒤 야권의 단일후보로 당선에 성공한답니다. 더 큰 꿈을 키워가던 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중도포기하는 시련도 겪었다. 그러나 서울시 최초 3선 시장 고지에 오르면서 여전히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넓혀왔답니다.